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여름마다 "계곡은 차 없으면 못 간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하철과 마을버스 환승 한 번으로 가평 용추계곡까지 다녀올 수 있다는 걸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그 생각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청량리역에서 경춘선을 타고, 가평역에서 71-4번 버스로 환승하면 30분도 채 안 됩니다. 환승 요금도 별도로 나가지 않습니다.
지하철로 계곡까지, 진짜 되는 건지 의심했습니다
계곡 여행은 차가 있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번 경험 이후 그 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청량리역에서 경춘선(京春線)을 타면 가평역까지 1시간 남짓이면 도착합니다. 경춘선이란 서울 청량리와 강원도 춘천을 잇는 광역철도 노선으로, 수도권 전철과 동일한 환승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즉, 지하철 타듯 타면 됩니다.
가평역에서 내리면 길 건너 버스 정류장에서 71-4번 버스를 탑니다. 오전 기준 8시 45분 버스를 타면 용추 종점에 9시 15분에 도착합니다. 이후 버스는 2시 30분, 4시 순서로 운행됩니다. 돌아올 시간을 미리 계산해두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이 부분은 출발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코스를 처음 알았을 때 가장 신기했던 건 환승 요금이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마을버스까지 추가 요금 없이 환승이 됩니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이 정도라면, 차 없이 여름 피서지를 찾는 분들에게 사실상 최선의 선택지 중 하나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냉풍골과 용추구곡, 각 지점이 다 달랐습니다
용추계곡은 흔히 용추구곡(龍湫九曲) 또는 옥계구곡이라고도 불립니다. 여기서 구곡(九曲)이란 계곡을 따라 이름 붙여진 아홉 개의 경관 지점을 의미합니다. 각 지점마다 전설과 지형적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그냥 걷는 길이 아니라 하나씩 짚어가며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트레킹 시작점에서 처음 만나는 볼거리는 냉풍골입니다. 냉풍골이란 계곡 암반 사이의 틈에서 차가운 공기가 자연적으로 분출되는 지형을 일컫는 말로, 쉽게 말해 자연이 만든 에어컨 구멍입니다. 제가 직접 그 앞에 서봤는데, 나뭇잎이 눈에 띄게 흔들릴 만큼 바람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인공 냉방과는 결이 다른, 습하지 않고 깨끗한 바람이었습니다.
3곡 탁영소(濯纓沼)에는 단군의 아내 용녀가 비를 내려 나라를 구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습니다. 현재 입수 가능한 구간이 이곳까지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물놀이를 계획하고 계신 분들은 이 구간을 기억해두실 필요가 있습니다. 이후 구간부터는 트레킹 전용입니다.
하이라이트는 8곡 구유연(龜遊淵)이었습니다. 구유연이란 계곡 양쪽이 수직 암벽으로 이루어진 협곡 지형 안에 깊고 푸른 연못이 형성된 곳을 말합니다. 수심이 상당하고, 가운데 바위가 거북이를 닮았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이 너무 맑아서 물고기가 그대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7곡 청풍협(靑楓峽)도 인상적이었는데, 푸른 단풍과 암벽 사이로 얇은 폭포 줄기가 흘러내리는 장면은 사진으로 다 담기 어려웠습니다.
용추계곡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입수 가능 구간: 3곡 탁영소까지. 이후는 물놀이 불가
- 냉풍골: 트레킹 시작점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자연 냉기 지점
- 8곡 구유연: 용추구곡의 하이라이트. 수직 암벽과 깊은 연못
- 버스 시간: 용추 종점 방향 45분, 이후 2시 30분, 4시 (복귀 기준)
- 총 트레킹 거리: 약 11km, 왕복 3시간~3시간 30분 (식사·휴식 포함)
옷 젖은 채로 숲길을 걷는 것, 진짜 냉방 효과가 있습니다
"계곡 트레킹이라면 두꺼운 등산화에 방수 재킷이 기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이 코스만큼은 그 상식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출발 직후 계곡에 몸을 담그고, 그 상태 그대로 숲길을 걷는 것이 이 코스를 제대로 즐기는 방식입니다.
저도 예전에 계곡을 갈 때마다 젖을까봐 몸을 사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처럼 초반부터 아예 물에 들어가서 옷을 적신 채로 걷기 시작하니 체감 온도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를 증발냉각 효과라고 합니다. 증발냉각이란 피부나 옷에 묻은 수분이 증발하면서 주변 열을 빼앗아 체온을 낮추는 물리적 현상입니다. 면 소재는 잘 마르지 않아 오히려 불쾌감이 생기니, 속건성(速乾性) 소재 의류를 입고 가시기를 권합니다. 속건성 소재란 수분 흡수 후 빠르게 건조되도록 설계된 기능성 섬유를 말합니다.
폭염 특보가 내려진 날이었음에도 숲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체감 더위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산림 내부는 동일 기온 조건에서 도심보다 체감 온도가 평균 3~7도 낮습니다(출처: 기상청). 그늘과 수분, 바람이 동시에 작용하는 계곡 숲길은 도심의 어떤 냉방 공간과도 결이 다릅니다.
트레킹 끝에 먹은 제육볶음, 이 맛이 여행의 완성이었습니다
트레킹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점말 마을에 내리면 다리 건너편에 식당이 있습니다. 저는 제육볶음 한정식 세트를 주문했는데, 1인분에 13,000원이었습니다. 가성비라는 단어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식사가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사실 트레킹 끝에 밥을 먹는 것과 그냥 밥을 먹는 것은 맛에서 차이가 납니다. 4시간 가까이 걷고 물에 들어갔다 나온 몸 상태에서 받아드는 한 상이니 맛이 없을 수가 없는 구조이기도 하지만, 이 집 된장찌개는 실제로 달랐습니다. 집집마다 손맛이 다른 집된장 특유의 구수함이 있었고, 짜거나 자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제육볶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계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양념이 과하지 않고 돼지고기 본연의 맛이 살아있었습니다. 쌈장에 싸 먹어도, 밥에 비벼 먹어도, 그냥 먹어도 어느 쪽으로 먹어도 맛이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여름방학 때 물장구 치다가 "밥 먹어라" 소리에 뛰어나오던 느낌과 비슷한 따뜻함이랄까요.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산림 트레킹 후 식사는 일반 식사 대비 포만감과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국립산림과학원). 이 날의 제육볶음이 그걸 몸으로 증명했습니다.
여름 당일치기 코스를 고민 중이라면, 용추계곡은 충분히 검토할 만한 선택입니다. 차가 없어도 되고, 등산 실력이 없어도 됩니다. 초반에 물에 들어가는 용기 하나만 있으면, 나머지는 계곡이 다 해줍니다. 다음에는 좀 더 이른 시간에 출발해서 1곡, 2곡부터 천천히 짚어가며 걷고 싶다는 생각이 이미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