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처음엔 강남에서 자연을 느낀다는 게 좀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빌딩과 차량 소음이 먼저 떠오르는 동네에서 하천길과 숲길이라니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수서역에서 출발해 탄천과 세곡천, 대모산을 거쳐 도곡역까지 걸어보고 나서는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강남둘레길 2코스와 3코스, 예상보다 훨씬 자연에 가까운 길이었습니다.
탄천과 세곡천이 만드는 생태하천길의 실력
강남둘레길 2코스의 공식 명칭은 '생태하천길'입니다. 수서역에서 헌릉IC까지 총 6.3km 구간인데, 이 중 약 3km 가까이가 무장애 데크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무장애 데크길이란 휠체어나 유모차도 통행할 수 있도록 단차와 경사를 최소화한 보행 전용 노면을 말합니다. 실제로 걸어보면 노면이 매끄럽고 평탄해서 운동화 하나면 충분하고, 중간중간 쉼터와 벤치가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어 걷다가 부담 없이 앉아 쉴 수 있었습니다.
탄천(炭川)은 경기도 용인에서 발원해 성남 도심을 가로질러 한강으로 합류하는 지류 하천입니다. 하천 생태 복원의 관점에서 보면 탄천은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도심 하천 중에서도 생물 서식 환경이 비교적 잘 유지되는 사례로 꼽힙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마침 벚꽃이 피기 시작하던 시기였는데, 물길과 벚꽃이 겹치는 구간에서 잠시 발걸음이 멈춰지더군요. 날씨가 맑지 않았던 게 유일한 아쉬움이었습니다.
탄천 구간을 지나면 세곡천으로 이어집니다. 세곡천은 강남구 세곡동 일대를 흐르며 탄천으로 합류하는 소지류(小支流)입니다. 소지류란 본류에 합류하는 작은 줄기 하천을 의미하는데, 세곡천은 한때 도심 개발 과정에서 정비가 소홀했던 구간이 많았지만 생태복원사업을 통해 현재는 산책로와 식생이 갖춰진 친수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이 구간에서 저는 솔직히 서울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사라졌습니다. 양옆으로 풀과 나무가 이어지고 사람도 많지 않아서 잠시 어딘가 외곽에 나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거든요.
세곡천 옆에는 힐링 텃밭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 부분이 예상 밖이었습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가족들이 직접 채소를 가꾸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제1 힐링 텃밭과 제2 힐링 텃밭이 마련되어 있었고, 주말을 맞아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웃으며 땅을 고르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서울 도심에서 이런 장면을 마주치면 괜히 마음이 느슨해지는데,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2코스의 주요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총 거리 6.3km, 실소요 시간 약 2시간 15분~2시간 30분
- 탄천과 세곡천을 따라 걷는 평탄한 무장애 데크길 약 3km
- 구간 내 파크골프장(A·B·C 3개 코스, 9홀), 힐링 텃밭, 쉼터 등 시설 보유
- 중도 이탈 시 세곡푸르지오·은곡사거리 정류소에서 버스 이용 가능
서울의 도시 공원 및 하천 녹지 공간은 1인당 생활권 도시숲 면적 기준으로 지속적으로 확대 추세에 있습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생활권 도시숲은 미세먼지 저감과 도시 열섬 현상 완화에 효과가 있으며, 걷기 중심의 생태탐방 코스 조성이 시민 건강과 삶의 질에 실질적인 영향을 준다는 분석이 제시되어 있습니다(출처: 서울연구원).
대모산 정상숲길, 293m라고 우습게 보면 안 됩니다
3코스의 이름은 '정상숲길'입니다. 헌릉IC에서 출발해 대모산 정상을 거쳐 개포근린공원으로 내려온 뒤 양재천을 지나 도곡역까지 이어지는 총 4.7km 구간입니다. 이름에 '정상'이 들어간 만큼 산을 올라야 하는데, 대모산(大母山)의 고도는 293m입니다. 수치만 보면 낮은 산이지만, 헌릉IC 방향에서 진입하면 정상까지 거의 쉬지 않고 오르막이 이어집니다. 제 경험상 이 구간은 체감 난이도가 숫자보다 훨씬 높습니다.
대모산 숲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솔잎이 두껍게 쌓인 임도(林道) 구간이었습니다. 임도란 산림 관리와 등산객 통행을 위해 조성된 산 속 비포장 길을 말하는데, 이 구간에서 솔잎을 밟으면 발바닥에 전해지는 감촉이 꽤 특별했습니다. 딱딱한 아스팔트나 딱딱한 등산 계단이 아니라, 푹신하면서도 약간의 저항감이 느껴지는 자연 바닥을 걷는 느낌이랄까요. 밟히는 소리도 달랐고, 코끝에 솔 향이 올라오는 게 걷는 내내 기분을 좋게 만들었습니다.
정상 부근에는 헬기장이 있고, 여기서 제한적이지만 조망이 열립니다. 헬기장이란 긴급 구조나 물자 수송을 위해 헬리콥터가 이착륙할 수 있도록 조성한 평탄 구역을 말하는데, 산 정상 헬기장은 나무가 없어서 시야가 트이는 조망 포인트 역할도 겸합니다. 다만 제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일부 계단 구간이 노후시설 개선 공사 중이어서 우회로를 찾아야 했습니다. 표지판이 없는 구간에서는 나무에 묶인 분홍색 리본이 길잡이 역할을 하는데, 이정표가 부실한 구간이 중간중간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대모산에서 내려오면 개포근린공원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생태 다리를 건너는 순간 숲의 분위기에서 도심의 분위기로 전환되는 느낌이 나는데, 이 경계감이 꽤 묘했습니다. 공원을 지나 양재천(良才川)까지 내려오면 다시 수변 산책로가 이어지고, 이곳에도 벚꽃이 피어 있어 코스의 마무리치고는 꽤 좋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도시 근교 숲 걷기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고 부교감신경 활성화를 유도해 심리적 이완 효과가 있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습니다(출처: 국립산림과학원). 대모산처럼 293m의 낮은 고도라도 도심 속에서 솔숲을 걷는 경험은 단순한 산책 이상의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코스의 가치는 거리나 높이만으로 가늠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강남둘레길 2코스와 3코스를 이어서 걷는 데 총 약 11km가 소요됩니다. 하천길의 평탄함과 산길의 경사감이 번갈아 나오는 구성이라 지루하지 않고, 도시 안에서 자연을 이렇게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코스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봄 벚꽃 시즌에 탄천과 양재천을 함께 걷는다면, 서울에서 꽤 괜찮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운동화 챙기고 출발 전 간식 하나 준비하는 것, 그걸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