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철역에서 겨우 2분 거리인데 이런 성곽길이 있었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 서울에서 10년 넘게 살면서도 동대입구역 5번 출구 바로 앞에 이렇게 매력적인 트레킹 코스가 숨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다산성곽길에서 남산 북측순환로까지 이어지는 약 8km 구간은 도심 속에서 역사와 자연, 그리고 일상의 여유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코스입니다.
동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시작하는 한양도성 트레킹
동대입구역 5번 출구로 나와 진행 방향으로 약 150m만 걸으면 다산성곽길 입구가 나옵니다. 여기서 한양도성(漢陽都城)이란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둘러싼 성곽으로, 총 길이 18.6km에 달하는 역사 유적입니다(출처: 문화재청). 저는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성곽 외벽을 따라 걷는 길이 낙산성곽길과 비슷하면서도 훨씬 아기자기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성곽 외부 코스로 접어들면 각자성석(刻字城石)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각자성석이란 성곽을 쌓을 때 책임 구역을 표시하기 위해 돌에 글자를 새긴 것을 말합니다. 한양도성은 실제로는 방어 목적보다 도성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상징적 역할이 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성벽을 오르내리며 걷다 보면 좁은 골목길 사이로 보이는 주택가와 카페들이 현대적인 감각과 옛 정취를 동시에 전해줍니다.
중간쯤에서 저는 성곽길 옆 작은 카페에 들렀는데, 입구에 매달린 풍경 소리와 창밖으로 보이는 성벽이 어우러져 묘한 안정감을 주더군요. 이 카페는 드라마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지만, 솔직히 분위기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약 1시간 정도 머물며 갓 구운 빵과 커피를 즐기는 동안,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산성곽 도서관과 내부 순성길의 이중 매력
다산성곽길은 성곽을 중심으로 내부와 외부 두 가지 코스로 나뉩니다. 외부 코스를 따라 걷다 보면 2021년 개관한 다산성곽 도서관이 나타납니다. 이 도서관은 한옥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옥외 마당과 계단형 독서 쉼터가 특히 인상적입니다. 저는 여기서 '문화 인프라'라는 개념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문화 인프라란 지역 주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시설과 프로그램을 의미합니다(출처: 서울시 도서관).
성곽 내부로 들어가면 순성길(巡城路)이 펼쳐집니다. 순성길이란 성곽 안쪽을 따라 순찰하던 길을 뜻하는데, 지금은 주민들과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산책을 즐기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도 운동복 차림의 직장인들이 가볍게 조깅하거나 걷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내부 순성길을 걷다 보면 성곽 일부 구간에서 지붕이 없이 시멘트만 발라진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마도 안전상의 이유로 임시 조치를 해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디테일에서도 역사 유적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시민의 안전을 지키려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중간에 위치한 팔각정 '성곽마루'에서는 남산이 시원하게 조망되며, 바람이 불어와 잠시 멍하니 앉아 있기에 좋았습니다.
북측순환로와 보행자 전용길의 쾌적함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주차장을 지나 국립극장 방향으로 가다 보면 남산 북측순환로 입구가 나타납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주차장을 건널 때 차량 통행을 잘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립극장 내부에는 화장실과 편의점이 있어 휴식을 취하기에 적합합니다.
북측순환로는 남산에서 제가 가장 선호하는 구간입니다. 남산 북측순환로 정류장을 기점으로 오른쪽 길은 완전한 보행자 전용도로(pedestrian-only road)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보행자 전용도로란 차량 통행을 전면 금지하고 오직 사람만 다닐 수 있게 만든 길을 말하며, 안전성과 쾌적함이 보장됩니다. 저는 이 구간에서 러닝을 즐기는 시민들을 많이 봤는데, 평탄한 포장도로와 차량 소음이 없는 환경 덕분에 산책뿐 아니라 운동하기에도 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측순환로 중간에는 소나무 힐링길도 있는데, 이전에 한 번 걸어본 적이 있지만 오늘은 다른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석호정(국궁체험장)도 지나게 되는데, 전통 활쏘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겨울철에는 얼음 계곡이 남아 있는 구간도 있어 계절의 변화를 직접 느낄 수 있습니다.
북측순환로 끝 무렵에는 전망대가 하나 있는데, 인왕산과 북한산이 둘러싼 서울 시티뷰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고층 빌딩과 아파트 숲이 밀집한 도심 풍경을 보며, 저는 '도시 밀도(urban density)'라는 개념을 떠올렸습니다. 도시 밀도란 단위 면적당 인구나 건물이 얼마나 집중되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서울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밀도를 자랑합니다(출처: 서울연구원).
실용적인 코스 정보와 마무리 팁
전체 코스는 다산성곽길 입구에서 북측순환로 끝까지 약 8km이며, 휴식 시간을 포함하면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중간에 카페나 도서관에서 여유롭게 쉬어가며 걷는다면 반나절 코스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저는 북측순환로를 마친 후 남산 왕돈가스 거리로 내려가 식사를 했는데, 파전과 비빔밥, 돈가스를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니 완벽한 힐링 코스가 되었습니다.
북측순환로 끝 지점에서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재미로'라는 이색적인 골목길이 있습니다. 원색으로 채워진 벽면과 인테리어 소품처럼 배치된 오토바이까지, 외국인 관광객이 많아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골목길은 사진 촬영 명소로도 알려져 있으니 시간 여유가 있다면 들러볼 만합니다.
2024년 기준 서울의 도보 여행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역사 유적과 자연이 결합된 코스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다산성곽길과 남산 북측순환로는 접근성, 코스 다양성, 문화 인프라가 고루 갖춰져 있어 초보자부터 숙련된 트레커까지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북측 숲길이 공사 중이어서 이번에는 체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북측 숲길은 명동에서 남산타워까지 가장 빠르게 오를 수 있는 신설 코스로, 기존 1시간 소요 구간을 20분으로 단축시켜 준다고 합니다. 전망 쉼터도 세 곳이나 마련되어 있다고 하니, 다음번 방문 시에는 꼭 걸어보려고 합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다채로운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습니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충분히 기분 전환이 되고, 역사적 가치까지 느낄 수 있는 코스를 찾는다면 다산성곽길과 남산 북측순환로를 강력히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