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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동해 기차 트레킹 (동해선, 해파랑길, 후포역)

by seokoon 2026. 4. 6.

봄 주말에 동해행 KTX-이음 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 적이 있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주말 기준 2주 전 예약은 사실상 필수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당일에 끊으면 되겠지 했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습니다. 봄 동해안을 기차로, 그리고 두 발로 걷는 여행법을 정리해 드립니다.

130년 만에 열린 동해선, 어떻게 활용할까

청량리역에서 오전 7시 5분에 출발하는 KTX-이음 열차를 타면 약 2시간 20분 만에 동해역에 닿습니다. 여기서 KTX-이음이란 한국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준고속열차로, 기존 KTX보다 속도는 다소 낮지만 중소도시 노선을 촘촘히 연결하는 데 특화된 차량입니다. 서울에서 동해까지 이 정도 시간이면 사실 비행기 타고 제주 가는 것보다 빠릅니다.

동해역에서 10분 뒤면 누리로 열차로 환승할 수 있습니다. 누리로란 한국철도공사가 운영하는 일반 광역급행철도 차량으로, 강릉에서 출발해 삼척, 포항을 거쳐 부전까지 이어지는 동해선 노선을 운행합니다. 이 동해선이 130년 만에 완전 개통했다는 점은 단순한 뉴스가 아닙니다. 일제강점기부터 끊어진 채 방치됐던 동해안 철도 구간이 마침내 연결된 것으로, 철도 인프라 측면에서 꽤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저도 처음 누리로 열차의 가장 앞자리를 예매했을 때 작은 테이블이 달려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커피 한 잔 올려두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동해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동해로 향할 때는 진행 방향 기준 왼쪽 좌석이 바다 쪽 뷰입니다. 모르고 오른쪽에 앉으면 조금 억울할 수 있습니다.

동해역에서 약 1시간 반을 더 달리면 경북 울진의 후포역에 도착합니다. 후포역은 승무원이 없는 무인역(無人驛)입니다. 무인역이란 역무원이 상주하지 않고 승객이 자동 시스템으로 승하차를 처리하는 역을 말합니다. 역 앞에 택시가 기차 시간에 맞춰 대기 중이지만, 저는 걸어서 이동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겨울 내내 굳어 있던 다리를 제대로 풀어볼 기회이기도 했고요.

동해선 열차를 이용할 때 실용적으로 알아두면 좋은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KTX-이음 주말 표는 2주 전 예매 필수
  • 동해역 환승 시 누리로 열차 대기 시간 약 10분
  • 후포역~고래불역 구간은 동해선 노선 내 연속 정차역
  • 고래불역 출발 ITX-마음 열차로 강릉 또는 서울 방향 복귀 가능
  • 관광 택시 이용 시 지자체에서 60%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 활용 가능

한국철도공사에 따르면 동해선 개통 이후 울진, 영덕 지역의 철도 이용객 수가 유의미하게 증가했으며, 지방 소멸 위기 지역에 교통 인프라 확충이 지역 경제 활성화에 직결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철도공사).

후포항에서 고래불까지, 해파랑길 걷기의 현실

후포역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동해 바다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그 사이 후포 버스 터미널을 지나고, 오래된 간판들이 늘어선 시골 마을 골목을 통과합니다. 저는 오래된 마을 골목을 걷는 것을 꽤 좋아하는 편인데, 의외로 기억에 남는 풍경이나 포토 스팟은 화려한 관광지보다 이런 곳에서 더 많이 나옵니다.

후포항은 울진군 최남단에 위치한 동해의 주요 어항(漁港)입니다. 어항이란 어선이 안전하게 출입하고 어획물을 하역·보관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춘 항구를 말합니다. 이곳은 특히 대게로 유명하지만, 대게 철이 아닌 봄에는 가자미가 주로 오릅니다. 항구 특유의 활기는 계절을 타지 않고, 어부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 자체가 여행자에게는 하나의 풍경이 됩니다.

등기산 스카이워크는 후포항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높이 20m, 길이 135m 규모로, 7층 건물 높이에서 바다 위를 걷는 구조물입니다. 마지막 57m 구간은 강화유리 바닥으로 되어 있어 발아래로 바다가 그대로 보입니다. 제가 직접 걸어봤는데, 체감 높이는 수치보다 훨씬 크게 느껴집니다. 주변이 온통 바다이기 때문입니다. 입장료는 무료이고, 매일 오전 9시에 개장합니다. 덧신 착용은 필수입니다. 강한 해풍에 모자가 날아가는 분들을 여러 명 봤으니 미리 단단히 고정해 두시길 권합니다.

등기산(燈旗山)이라는 이름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낮에 봉화 대신 흰 깃발을 꽂던 산이라는 뜻으로, 옛날 해상 신호 체계가 이 지명에 그대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정상에는 세계 유명 등대 미니어처들을 모아 놓은 등대 공원이 있는데, 영국의 벨록 등대, 독일의 브레머하펜 등대, 프랑스의 코르두앙 등대, 이집트의 파로스 등대 등이 있습니다. 파로스 등대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현재는 소실되었지만 대략의 형태를 이 모형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후포항을 지나면 해파랑길(海波廊길)이 이어집니다. 해파랑길이란 부산 오륙도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을 따라 연결된 총 770km의 장거리 트레킹 코스로, 국내 최장 해안 걷기 노선입니다(출처: 한국관광공사). 동해안을 걷다 보면 해파랑길 리본이 곳곳에 달려 있어서 길을 잃을 걱정이 없습니다. 영덕에 들어서면 블루로드(Blue Road) 8구간으로 이어지는데, 블루로드란 영덕군이 조성한 해안 트레킹 코스로 바닥과 방파제에 파란색 페인팅을 해두어 시각적으로 코스를 안내하는 방식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도색인 줄 알았는데, 길 안내 역할을 한다는 걸 알고 나서는 꽤 영리한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후포항에서 고래불 해수욕장까지 총 거리는 약 12km, 소요 시간은 2시간 반 정도입니다. 고래불 해변은 길이가 8km에 이르는 백사장으로, 인접한 대진 해수욕장과 함께 '명사 20리'라 불립니다. 고려 말 목은 이색 선생이 이 앞바다에서 고래가 뛰어노는 것을 보고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집니다. 이 코스 전체가 거의 평지라 체력 부담이 크지 않지만, 상점이 많지 않으니 출발 전에 물과 간식은 반드시 챙겨야 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봄이라 덥지 않다고 방심했다가 탈수 증상이 올 수 있습니다.

봄 동해안 트레킹은 여름 성수기의 혼잡함 없이 바다를 온전히 만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이 코스를 처음 시도하는 분들에게 한 가지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교통편 연계가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버스는 배차 간격이 길고, 무인역 플랫폼 출입문은 출발 10분 전에야 자동으로 열립니다. 체력이 여의치 않다면 관광 택시를 이용하는 것도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지자체 지원으로 시간당 1만 원 수준으로 이용이 가능합니다.

걷는 여행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과정 자체가 목적이 된다는 말을 저도 어느 순간부터 실감하고 있습니다. 동해 바다를 바로 옆에 두고 12km를 걷고, 고래불역에서 열차를 타면 걸어온 거리를 기차가 10분 만에 달립니다. 그 10분에 아이러니하게도 조금 허탈해지면서, 동시에 걸어온 시간이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봄 동해안 기차 트레킹을 고민 중이라면, 이 루트를 참고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Q7kU6nNax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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