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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봉 역사 걷기 (은행나무, 연산군묘, 김수영, 간송옛집)

by seokoon 2026. 4. 22.

600년 된 나무가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 쉽게 실감이 되시나요? 저는 방학동 은행나무 앞에 처음 섰을 때 크기보다 묵직함이 먼저 왔습니다. 도봉구 방학동 일대는 단순한 동네 산책로가 아닙니다. 조선 왕실의 묘역부터 근현대 문학과 문화재 수호의 흔적까지, 한 코스 안에 겹겹이 쌓인 시간을 걸어서 통과하는 길입니다.

600년 은행나무와 연산군묘, 같은 동네에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으신가요

우이신설선 북한산우이역 1번 출구에서 출발해 북한산둘레길 20구간, 이른바 왕실묘역길을 따라 400미터 정도 걸으면 숲 진입로가 나옵니다. 북한산둘레길이란 북한산 자락을 따라 조성된 총 71.5km의 탐방로로, 서울과 경기도를 아우르는 도보 생태 네트워크입니다. 버스로 건너뛸 수 있는 구간이지만, 저는 굳이 숲길을 택했습니다. 3월의 산은 아직 초록이 없는데도 공기가 달라서, 그것만으로 충분히 걸어볼 이유가 됩니다.

숲길을 빠져나오면 바로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서울시 지정보호수 제1호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나무는 수령이 약 600년에 달합니다. 처음 보는 분들은 "크긴 크네" 하고 지나치기 쉬운데, 제가 직접 앞에 서보니 크기보다 그 자리를 지켜온 세월의 무게가 먼저 느껴졌습니다. 단순한 관광지에서는 쉽게 얻기 어려운 감각이었습니다.

이 나무에는 역사적 일화도 남아 있습니다. 경복궁 증축 당시 징목 대상에 올랐으나 마을 주민들이 흥선대원군에게 직접 간청해 제외되었고, 이후 '대감나무'라는 이름도 얻게 됩니다. 도봉구는 이후 나무의 생육 환경 개선을 위해 인근 다세대주택을 매입하고 녹지 공간으로 정비했습니다. 생육 환경이란 나무가 뿌리를 뻗고 가지를 키우는 데 필요한 토양, 햇빛, 공간 조건을 뜻하는데, 도심 한복판에서 이 정도 배려를 받는 나무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은행나무 바로 앞에는 연산군묘가 자리합니다. 폐위된 군주는 왕릉(陵)이 아닌 묘(墓)로 남습니다. 왕릉과 묘의 차이는 단순한 명칭 문제가 아니라 조선 왕조가 그 인물을 어떻게 규정했는지를 반영하는 역사적 지위의 차이입니다. 이곳에는 연산군 부부 묘 외에도 태종의 후궁이었던 의정궁주 조씨의 묘, 연산군의 딸 휘순공주와 사위 구문경의 묘까지 총 다섯 기가 함께 있습니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의정궁주 묘에 훗날 연산군이 묻히면서 지금의 풍경이 만들어졌다는 점이 제게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김수영 문학관, 조용한 공간이 이렇게 오래 남는 이유가 있습니다

연산군묘에서 걸음을 이어가면 원당샘 공원을 지납니다. 원당샘이란 600여 년 전 파평 윤씨 일가가 원당마을에 정착하면서 생활용수로 사용하던 우물로, 한때 물이 끊겨 사라질 뻔했으나 지하수를 연결해 복원한 곳입니다. 묘역 바로 옆에 이런 샘터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이 동네가 얼마나 긴 생활의 켜를 품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원당샘공원 옆에는 원당마을한옥도서관이 붙어 있습니다. 처음 보면 도서관이라기보다 한옥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저는 이 공간이 예상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공부방 같은 딱딱함이 아니라 잠깐 앉아 책 한 권을 펼쳐보고 싶어지는 분위기였거든요.

이어서 만나는 김수영 문학관은 이 코스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머문 곳입니다. 화려한 전시보다 한 사람이 시대와 어떻게 맞섰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었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전시 구성이 생각보다 묵직했습니다.

김수영은 흔히 '자유의 시인'으로 불리지만, 정확하게는 참여시론(參與詩論)을 대표하는 시인입니다. 참여시론이란 문학이 사회 현실로부터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으로, 1960년대 한국 문단에서 순수시론과 첨예하게 대립했던 이념적 흐름입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달나라의 장난」, 「폭포」, 「풀」 등이 있으며, 일상적인 언어 안에 날카로운 사회의식을 담아낸 것이 특징입니다. 어떤 독자에게는 어렵고 거칠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긴장감이 오히려 이 공간을 단순한 기념관이 아닌 성찰의 공간으로 만들어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의공주 묘역, 한글을 만드는 데 딸도 함께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김수영 문학관에서 150미터 남짓 걸으면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이 나옵니다. 이름만 들으면 낯설게 느껴지실 수 있는데, 정의공주는 세종대왕의 둘째 딸입니다. 한글과의 연관성은 훨씬 더 구체적입니다. 정의공주는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음운 변천(音韻變遷)과 방언 분석에 기여했다고 전해집니다. 음운 변천이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말소리가 변화하는 현상으로, 새 글자가 실제 백성의 다양한 말에 얼마나 잘 맞는지를 검토하는 데 핵심적인 작업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이 그 공을 인정해 상으로 노비를 내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출처: 문화재청).

우리가 매일 쓰는 한글 뒤에 세종대왕뿐 아니라 그의 딸의 손길도 닿아 있었다는 사실은, 이 길이 왜 '한글 역사문화길'로 불리는지를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배경 지식 없이 그냥 지나치는 묘역과, 알고 들어가는 묘역은 전혀 다른 무게로 남습니다.

묘역 뒤편 언덕을 조금 오르면 사천 목씨(泗川睦氏)의 선영과 재실이 나옵니다. 이 가문은 조선시대에 할아버지, 아들, 손자까지 3대가 연이어 기로소(耆老所)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로소란 나라에 공을 세운 고위 원로 문신들을 예우하기 위해 조선이 설치한 기관으로, 오늘날로 치면 국가 공인 원로 예우 제도에 해당합니다. 3대 연속으로 이름을 올린 가문은 역사적으로도 드문 사례입니다.

이 일대에 왕실 묘역과 명문가 선영이 밀집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도봉 지역은 예로부터 왕족과 그 후손들이 선영을 조성하던 곳으로, 현재 도봉구청이 이를 연계한 역사문화길을 별도로 조성해 운영하고 있습니다(출처: 도봉구청).

간송옛집, 화려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이 코스의 마지막 주요 목적지는 간송옛집, 전형필 가옥입니다. 담장을 따라 들어서면 조용한 한옥 한 채가 전부인데,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조용하지 않습니다.

간송 전형필은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재가 헐값에 팔려나가고 해외로 유출되던 시절, 사재를 털어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한 청자, 불상, 옛 그림과 서적 등을 수집해 지켜낸 인물입니다. 그가 지킨 것은 오래된 골동품이 아니라 한 번 나가면 되찾기 어려웠을 우리 문화의 근간이었습니다. 이 가옥은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 한옥으로, 국가등록문화유산 제52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코스에서 방문하게 되는 주요 장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서울 방학동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수령 약 600년)
  • 연산군묘 (조선 폐위 군주 묘역, 총 5기)
  • 원당마을한옥도서관 (한옥 형태의 공공 도서관)
  • 김수영 문학관 (현대 참여시론 대표 시인 기념관)
  • 양효공 안맹담·정의공주 묘역 (한글 역사문화길)
  • 사천 목씨 선영과 재실 (3대 기로소 입소 가문)
  • 간송옛집 전형필 가옥 (국가등록문화유산 제521호)

간송옛집에서 걸음을 마무리하고 방학동 도깨비시장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좋았습니다. 하루 종일 역사와 시간을 통과하다가 시장 골목의 냄새와 소리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순간, 비로소 현실로 돌아오는 느낌이랄까요. 제 경험상 이런 대비가 있어야 걷기가 끝난 후에도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도봉구 방학동 일대는 화려한 관광지를 원하는 분들께는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 교과서 속 인물들의 실제 흔적을 걸으면서 통과하고 싶다면, 이 코스는 꽤 오래 기억에 남을 선택이 될 겁니다. 북한산우이역에서 방학역까지 한 방향으로 이어지는 구조라 교통 동선도 단순합니다. 봄이 완전히 열리기 전, 한 번 걸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Sk8KiylaQV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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