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 산책하려면 한강이나 올림픽공원 같은 넓은 공간을 먼저 떠올리지 않으십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고속터미널역에서 방배역까지 이어지는 이 코스를 직접 걸어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도심 속 좁은 골목과 언덕 위에 서울의 가장 다른 얼굴이 숨어 있었습니다.
피천득 산책로와 서래마을 — 문학과 이국 문화가 공존하는 배경
고속터미널역 5번 출구를 나오면 예상과 달리 바로 신반포공원으로 이어지는 초록빛 길이 펼쳐집니다. 이 길이 바로 '피천득 산책로'입니다. 일반적으로 산책로라고 하면 공원 안에 조성된 포장길을 떠올리기 쉽지만, 여기는 분위기가 조금 다릅니다. 한국 수필문학의 대표 작가 금아(琴兒) 피천득(1910~2007) 선생이 1980년부터 생애 마지막인 2007년까지 27년간 실제로 즐겨 걸었던 둑길입니다. 선생이 직접 밟고 지나갔을 그 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발걸음이 조금 달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산책로는 고속터미널역 5번 출구에서 이수교차로까지 약 1.7km 이어집니다. 봄에는 벚꽃이, 여름에는 느티나무 그늘이 길을 덮는 구조라 계절마다 전혀 다른 분위기를 줄 것으로 보입니다. 산책로 오른편 아래에는 황톳길도 400미터 가량 조성되어 있는데, 맨발 걷기를 즐기는 분들을 위해 양쪽에 신발장과 세족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세족장이란 발을 씻을 수 있도록 설치된 세척 시설을 의미합니다. 맨발로 흙길을 걸은 뒤 바로 발을 씻고 신발을 신을 수 있어 실용성이 높은 편이었습니다.
산책로 중간에서 방향을 틀면 서래마을로 진입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서래마을은 프랑스 카페와 베이커리가 가득한 이국적 거리로 알려져 있지만, 제가 직접 걸어보니 실제로는 생각보다 가게 수가 많지 않고 분위기도 여느 서울 주택가 골목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기대와 현실 사이에 적잖은 간격이 있다는 점은 솔직히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서래마을의 역사적 배경까지 평범한 것은 아닙니다. 1985년 서울 프랑스 학교(LFS, Lycée Français de Séoul)가 이곳에 이전하면서 프랑스인 거주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습니다. LFS란 프랑스 교육부의 공식 인가를 받은 정규 학교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프랑스 본토와 동일한 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기관입니다. 1990년대 KTX 기술 도입 과정에서 프랑스 알스톰사의 TGV(Train à Grande Vitesse, 고속열차) 기술이 채택되며 기술진이 대거 정착했고, 한때 국내 거주 프랑스인의 약 40%가 이 일대에 살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작은 빵집에 들러 바게트 몇 조각을 샀는데, 트레이에 담다 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아진 것은 제 계획의 실패였습니다.
몽마르뜨 공원과 누에다리 — 역사 지층 위에 세워진 공간
서래마을 언덕을 오르면 몽마르뜨 공원이 나옵니다. 파리의 예술가 거리 '몽마르뜨 언덕'에서 이름을 따온 공원인데, 처음에는 그냥 이름만 붙인 테마 공원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올라서 보니 반 고흐, 고갱 등 예술가들의 흉상과 프랑스 시인들의 시비(詩碑)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시비(詩碑)란 시 작품을 새겨 세운 돌 기념물을 뜻합니다. 단순한 공원 장식이 아니라, 걷는 내내 작은 미술관을 지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 공원은 원래 아카시아 나무가 우거진 야산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 상수도 배수지 공사가 끝난 뒤 남은 부지를 서래마을의 특성에 맞게 개발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고, 2006년 한불 수교 12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식 정원 양식이 추가되었습니다. 언덕에서 서초구 일대를 내려다보았을 때, 늘 지나치던 익숙한 서울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날의 제 경험상, 이 언덕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방문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공원 외곽에는 '누에다리'라는 특이한 구조물이 있습니다. 2009년 몽마르뜨 공원과 서리풀 공원을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행 육교인데, 이 다리에는 지명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조선시대 이 일대에는 잠실도회(蠶室都會)라는 국가 양잠 기관이 있었습니다. 잠실도회란 국가 주도로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길러 비단을 생산하던 관영 시설을 의미합니다. 그 역사적 흔적이 오늘날 서초구 잠원동이라는 지명에 남아 있습니다. 잠원동은 '잠(蠶, 누에)'과 인근 신원리(新院里)의 '원(院)'을 합쳐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이 코스에서 확인할 수 있는 주요 랜드마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피천득 산책로: 고속터미널역 5번 출구 → 이수교차로 약 1.7km, 황톳길 400m 병행
- 서울 프랑스 학교(LFS): 1985년 서래마을 이전, 프랑스 본토 교육과정 운영
- 몽마르뜨 공원: 2006년 한불 수교 120주년 기념 프랑스식 정원 조성
- 누에다리: 몽마르뜨 공원-서리풀 공원 연결, 조선 양잠 역사 반영
- 청권사(淸權祠): 효령대군을 모신 사당, 서울시 유형문화재
서리풀 공원과 청권사 — 이름 안에 담긴 서초의 정체성
서행길 5코스는 서초구 산책로 브랜드 '서행길(서초행복길)'의 다섯 번째 코스입니다. 서행길이란 '행복'과 '느리게 걷다'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담은 서초구의 도보 산책 브랜드로, 총 5개 순환 코스 26.9km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5코스는 고속터미널에서 방배역까지 약 4.1km 구간입니다(출처: 서초구청).
이 코스의 중심을 이루는 서리풀 공원은 이름 자체가 서초구의 정체성을 담고 있습니다. '서리풀'은 서초(瑞草), 즉 '상서로운 풀'을 우리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서초(瑞草)란 상서롭고 길한 기운이 깃든 풀이라는 뜻으로, 이 일대에 그런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는 기록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집니다. 오늘날 서초동, 서초구라는 지명이 모두 이 서리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공원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고 무장애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어 유모차나 휠체어로도 오를 수 있습니다. 무장애 데크길이란 경사를 완만하게 하고 단차를 없애 신체적 어려움이 있는 사람도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 보행 경로를 의미합니다. 운동 시설과 배드민턴장, 쉬어가기 좋은 정자까지 갖추고 있어 근처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서울의 도심 공원이 거창한 관광지가 아니라 동네 사람들의 생활 공간으로 기능한다는 점이, 걷는 내내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코스의 마지막에는 청권사(淸權祠)가 있습니다. 조선 제3대 왕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孝寧大君)을 모신 사당으로, 현재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출처: 서울시 문화재과). 효령대군이 왕위 계승 서열에 있었음에도 동생 충녕대군, 즉 세종대왕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평생 불교에 귀의하며 91세까지 살았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진 편입니다. 하지만 그 사당이 지금 방배역 바로 앞에 있다는 사실은 걸어보기 전까지는 몰랐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역사 공간이 생활 반경 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코스의 가장 묵직한 마무리였습니다.
서울을 '바쁜 도시'로만 보는 시각도 있지만, 고속터미널역에서 방배역까지 이 약 4km 남짓한 길을 걷고 나면 그 생각이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문학, 이국 문화, 역사, 자연이 한 루트 안에 겹겹이 쌓여 있는 공간이 서울 도심에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평일 오전, 사람이 적은 시간대에 이 코스를 천천히 걸어보시길 권합니다. 이동이 목적이 아니라 걷는 과정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험은, 해보기 전과 후가 꽤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