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해방촌을 처음 걸었을 때, 저는 그냥 카페 많은 언덕 동네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골목 하나를 돌 때마다 시대가 바뀌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 집 옆에 감각적인 소품샵이 붙어 있고, 그 골목 끝으로 남산 서울타워가 보이는 풍경은 서울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었습니다. 용산과 마포 일대를 잇는 이 도심 역사 산책 코스, 한 번 제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해방촌과 신흥시장, 이름에 담긴 시대의 무게
일반적으로 해방촌은 트렌디한 카페 골목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제가 직접 걸어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이 동네의 형성 자체가 한국 근현대사의 압축판입니다.
해방촌이 자리한 언덕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신궁(朝鮮神宮)의 부속 구역이었습니다. 조선신궁이란 일제가 식민 지배의 상징으로 남산 일대에 조성한 신도(神道) 시설로, 조선인들에게 강제 참배를 요구하던 공간입니다. 그 언덕이 1945년 해방 직후, 집과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해방을 맞아 스스로 정착했다는 의미에서 해방촌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후 지방에서 올라온 이주민들이 몰리며 서울을 대표하는 달동네로 자리 잡았습니다.
해방촌 오거리에서 조금 올라가면 나오는 해방타워 자리는 숭실학교(崇實學校) 터입니다. 숭실학교는 1897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베어드가 평양에 설립한 학교로, 을사조약 반대 운동과 3.1운동, 신사참배 거부 운동의 거점 역할을 했습니다. 신사참배 거부란 일제가 종교 시설에 대한 참배를 강요하던 것에 맞서 신앙적 원칙을 지킨 행위로, 당시 강제 폐교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시인 윤동주를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 학교를 거쳐갔다는 사실은 이 골목을 걷는 무게를 다르게 만듭니다.
언덕 중간에 있는 후암동 108계단도 그냥 지나치기 아깝습니다. 이 계단은 경성호국신사(京城護國神社)로 오르던 참배로(參拜路)였습니다. 참배로란 신사까지 이어지는 의례용 통로를 뜻하는데, 신사가 철거된 이후에도 주민들의 생활 통로로 남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28억 원을 들여 서울시 최초로 주택가에 경사형 승강기가 설치되었습니다.
신흥시장을 직접 들어가 봤을 때, 이건 제 경험상 여느 전통시장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오래된 시장 골목에 감각적인 카페와 독립 상점들이 들어섰고, 최근에는 코카콜라와의 협업으로 내부를 새단장하면서 젊은 방문객이 부쩍 늘었습니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 사업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는 변화입니다. 도시재생이란 낙후된 구도심의 물리적·사회적 환경을 개선하면서 지역 정체성은 유지하는 방식의 정비 사업을 말합니다(출처: 서울특별시 도시재생포털).
해방촌 일대를 걸을 때 주의할 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인도가 없는 구간이 많아 차량과 마주치는 경우가 잦습니다. 걸을 때 여유 공간을 항상 확인하세요.
- 후암동 108계단 경사형 승강기는 4층 구조로 중간층 하차가 가능합니다.
- 해방촌 오거리 정류소는 방향별로 탑승 위치가 다르니 내려갈 때는 편의점 앞 정류소를 이용해야 합니다.
- 신흥시장은 주말 오후에 혼잡도가 높으니 오전 방문이 쾌적합니다.
당고개 순교성지와 절두산, 역사의 무게를 발로 걷다
당고개 순교성지(堂고개殉敎聖地)와 절두산 순교성지(切頭山殉敎聖地)는 제가 들렀을 때 가장 발걸음이 느려진 곳이었습니다.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도심 속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사실이 낯설기도 하고, 묘하게 무겁기도 했습니다.
당고개 순교성지는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 때 열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된 자리입니다. 기해박해란 조선 헌종 5년에 조정이 천주교를 대규모로 탄압한 사건으로, 프랑스 선교사와 조선인 신자 수백 명이 순교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천주교의 평등 교리가 조선의 신분제 질서와 충돌했고, 조상 제사를 거부하는 신자들에 대한 반감이 박해를 더욱 거세게 만들었습니다. 현재 이곳은 신계역사공원으로도 불리며, 도심 속 사색의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절두산 순교성지는 분위기가 또 다릅니다. 한강변 절벽 위에 자리한 이곳은 원래 잠봉(蠶峰)이라 불리던 곳이었습니다. 잠봉이란 누에 머리 모양을 닮은 봉우리를 뜻하는데,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흥선대원군이 이곳에서 대규모 처형을 감행하면서 절두산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병인박해란 조선 고종 3년에 프랑스 선교사와 조선인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한 사건으로, 이를 빌미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한 병인양요(丙寅洋擾)로 이어졌습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가 절두산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동상 앞 광경이었습니다. 수많은 신자들이 줄을 서서 동상의 손 부분을 만지고 기도를 드리는데,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는 그 손이 오히려 어떤 설명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 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곳에는 성당, 박물관, 십자가의 길이 함께 조성되어 있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순례지(巡禮地)로 기능합니다. 순례지란 종교적·역사적 의미가 깊은 장소를 직접 방문하며 묵상하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말합니다.
한 가지 비교해 보자면, 당고개는 조용하고 내밀한 분위기라 혼자 걷기 좋은 반면, 절두산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개방된 공간이어서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두 곳을 모두 하루 동안 걸어서 이으면, 조선 후기 종교 박해의 흐름을 몸으로 느끼는 경험이 됩니다.
이 코스를 한 번에 다 걸어본 뒤 드는 생각은 단순합니다. 서울은 역사를 아는 만큼 다르게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도심 산책은 가볍게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제 경험상 해방촌에서 절두산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걸을수록 생각이 많아지는 코스입니다. 마음에 여유가 있는 날, 대중교통과 두 발만으로 반나절을 투자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