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북동이 '부자 동네'라는 인식, 혹시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대사관저와 기업 회장 저택이 즐비하다는 이미지가 먼저였는데, 실제로 걸어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동네는 부촌이기 이전에, 수백 년의 역사와 문학과 신앙이 골목골목 스며든 공간이었습니다.
꿩 바다 마을이 대사관길이 된 사연
성북동의 지명 변천을 따라가다 보면 이 동네가 얼마나 극적으로 달라졌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조선 시대에는 이곳을 '성심리(城心里)'라 하여 성곽 심리(心里) 이내, 즉 성곽 기준 백보 안에는 매장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일종의 도시계획 규제였는데, 요즘으로 치면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에 해당하는 개념입니다. 그린벨트란 무분별한 도시 확장을 막기 위해 개발을 제한하는 구역을 말하는데, 조선 시대에 이미 이와 유사한 발상이 존재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과거에는 꿩이 들판을 가득 메워 '꿩 바다 마을'이라 불릴 만큼 한적했던 이 일대가 바뀌기 시작한 건 영조 때 이인좌의 난 이후였습니다. 한양도성 방어를 위해 둔전(屯田)이 조성되었고, 약 30여 가구가 처음 정착했습니다. 둔전이란 농사를 지으며 군대가 주둔하는 경작지를 뜻합니다. 그 시절 정착민들에게는 마전(麻田), 즉 모시나 삼베를 하얗게 표백하는 작업에 대한 독점권도 주어졌는데, 이로 인해 성북동에 '마전터'라는 지명이 남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 들어 삼청터널과 북악 스카이웨이가 개통되면서 성북동은 본격적으로 부촌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심까지 자가용으로 10분이면 닿고, 터가 넓고 남향인 입지는 당시 기준으로 이상적인 주거지였습니다. 독일 대사관이 70년대 초 이 일대에 22,140평 규모의 부지를 가장 먼저 매입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도 30곳이 넘는 대사관저가 이 동네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걸어보니 대사관 담장이 이어지는 구간에는 인도가 끊기는 곳이 여럿 있었는데, 보행자 입장에서는 꽤 불편한 현실이었습니다.
우리옛돌박물관, 돌이 아니라 시간이 말을 거는 곳
길상사에서 도보로 약 10분, 성북 02번 마을버스 종점 바로 옆에 우리옛돌박물관이 있습니다. 이곳은 국내외 석조 유물을 전문적으로 수집·전시하는 세계 유일의 석조 전문 박물관입니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1만 원이며, 주말 기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고 월요일은 휴무입니다.
처음 입구에서 마주치는 건 동자석(童子石)과 벅수들입니다. 동자석이란 16세기에서 18세기 중반 사이 서울과 경기 지역의 왕실 및 사대부 묘역에 배치된 석조 조형물로, 쌍상투를 틀고 지물(持物)을 든 어린아이 형태를 띱니다. 지물이란 불상이나 석상이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엄숙할 수밖에 없는 묘역에 생기를 불어넣는 존재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저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귀엽게 조각해 둔 석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안에 이렇게 정교한 맥락이 있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벅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벅수란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에서 장승을 부르는 순우리말인데, 전문 장인이 아닌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규격화된 틀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민초들의 소박한 소망과 웃음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야외 정원인 '돌의 정원'을 걷다 보면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경매 등을 통해 환수된 석상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공간은 단순한 야외 전시장이 아니라, 약탈과 복원의 역사를 발로 밟으며 체감하는 곳이었습니다.
성북동이 지닌 문화재적 가치는 국가 차원에서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문화재청은 성북동 일대 한양도성 구간을 조선 시대 성곽 축성 방식이 가장 잘 보존된 구간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현재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출처: 문화재청).
심우장, 북향으로 지은 집이 담고 있는 것
우리옛돌박물관에서 내려오다 보면 만해 한용운 선생의 동상이 길 옆 작은 공원에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님의 침묵'으로 알려진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그리고 승려였던 인물입니다. 동상 뒤편으로 이어지는 데크 계단을 오르면 약 50m 골목길 끝에 심우장(尋牛莊)이 나옵니다. 사적 제550호로 지정된 이 목조 가옥은 1933년에 지어졌습니다.
심우장이라는 이름은 불교 수행의 단계를 소를 찾는 과정에 빗댄 '심우도(尋牛圖)'에서 따온 것입니다. 심우도란 깨달음을 향한 10단계의 수행 과정을 동자승과 소의 비유로 표현한 그림으로, '진리를 찾아가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실은 방향입니다. 대부분의 한옥이 남향으로 지어지는 것과 달리 심우장은 북향입니다. 당시 조선 총독부가 있던 방향을 등지고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제가 직접 그 공간에 서봤을 때, 단순히 오래된 집을 구경하는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북향이라는 선택 하나에 담긴 저항의 의미가 공간 전체에 조용히 배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한용운 선생은 3.1운동으로 3년간 옥고를 치른 뒤 성북동 셋방에서 생활하던 중, 승려 벽산 김적금이 내어준 52평의 땅과 여러 유지들의 도움으로 이 집을 짓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독립운동가 애국지사들과의 교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로, 단순한 문화재를 넘어 근대사의 한 장면을 담은 공간입니다.
성북 근현대문학관과 선잠단지, 걷기로만 완성되는 코스
심우장을 나와 골목을 따라 내려오면 성북 역사문화 공원 옆으로 성북 근현대문학관이 나타납니다. 2024년 3월에 개관한 이곳은 성북 지역에 거주했거나 이 지역을 배경으로 작품을 남긴 문인들을 아카이브 형태로 정리한 공간입니다. 아카이브(Archive)란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있는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료로 운영되며 규모는 작지만, 이 동네가 단순히 부촌이 아니라 문학의 토양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북 근현대문학관에서 쏟아지는 이름들, 즉 김광섭, 박태원, 한용운을 한 동네에서 마주치는 경험은 걷지 않으면 절대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지도 앱으로 경로를 짜는 것과 실제로 두 발로 걷는 것 사이의 간극이 이렇게 크게 느껴진 코스는 드물었습니다.
이 코스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장소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우리옛돌박물관: 석조 유물 전문 박물관, 성인 1만 원, 월요일 휴무
- 심우장: 한용운 선생 자택, 사적 제550호, 무료 관람
- 성북 근현대문학관: 2024년 3월 개관, 무료, 성북 문인 아카이브
- 선잠단지: 조선 시대 양잠 제례 공간, 성북 선잠박물관 인접
- 길상사: 법정 스님의 도량, 성북 02번 마을버스 이용
마지막으로 향하는 선잠단지(先蠶壇址)는 조선 시대 왕비가 친히 누에를 치며 양잠을 장려하던 제례 공간입니다. 선잠제(先蠶祭)란 누에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왕실 의례로, 농경 사회에서 양잠이 얼마나 국가적으로 중요한 산업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세종대왕은 각 도에 뽕나무를 심고 잠실을 설치하도록 장려했으며, 우리가 잘 아는 잠실(蠶室) 지명이 바로 여기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꽤 직관적인 발견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농업 및 잠업 관련 기록은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왕조실록에서 상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성북동을 한 번 걷고 나면 이 동네를 단순히 '부촌'이라고 부르는 게 좀 민망해집니다. 불교와 독립운동, 문학과 조선 시대 제례 문화, 그리고 근대 이주민의 삶까지 한 동네 안에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한성대입구역에서 출발해 마을버스 한 번과 두 발이면 하루 안에 이 모든 층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봄이나 가을, 날이 좋은 날에 한 번쯤 직접 걸어보시길 권합니다. 지도 화면이 아니라 실제 골목에서 느끼는 온도가 분명히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