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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역 트레킹 (항동철길, 푸른수목원, 숲길산책)

seokoon 2026. 7. 2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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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여행 기분을 내려면 멀리 가야 한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7호선 천왕역에서 내려 온수역까지 걸어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지하철 두 정거장 사이에 폐철로, 수목원, 숲길, 그리고 역사적인 공간까지 다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무도 안 알려준 도심 속 폐철로의 분위기

    천왕역 3번 출구에서 300m쯤 올라가면 주택가 골목 사이로 녹슨 철길이 불쑥 나타납니다. 항동철길입니다. 이 철길이 만들어진 건 1950년대로, 국내 최초의 비료 회사였던 경기화학공업주식회사(현 KG케미칼)가 부천 옥길동 공장의 원료와 생산품을 운반하기 위해 1959년 완공한 4.5km 단선 화물 철도입니다. 단선 화물 철도란 상행선과 하행선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선로만 있는 화물 전용 노선을 말합니다. 이후 비료 수송은 물론 군수 물자 운반까지 담당하다가 공장 이전과 2016년 항동지구 개발 공사를 기점으로 완전히 운행이 멈췄습니다.

    제가 직접 걸어봤는데, 경의선 숲길이나 경춘선 숲길처럼 공원형으로 정비된 폐선 산책로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습니다. 여기서 폐선 산책로란 열차 운행이 중단된 옛 철로를 걷기 좋게 조성한 도심 산책 코스를 뜻합니다. 항동철길은 그런 정비를 거의 하지 않아 옛 철로와 주변 풍경이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습니다. 덕분에 꾸민 티가 나지 않아서 오히려 사진이 더 자연스럽게 잘 나왔고, 발걸음도 자연스럽게 느려졌습니다.

    서울시가 조성한 대표적인 폐선 산책로는 세 곳입니다.

    • 경의선 숲길 (마포~용산 구간, 공원형으로 정비)
    • 경춘선 숲길 (성북~노원 구간, 정원 및 카페거리 조성)
    • 항동철길 (구로~부천 구간, 원형에 가깝게 보존)

    푸른수목원, 도심 수목원으로서의 생태적 가치

    항동철길을 따라 내려오면 자연스럽게 푸른수목원 정문과 연결됩니다. 서울 최초의 시립 수목원으로, 20여 개의 테마 정원과 약 1,900여 종의 국내외 식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시립 수목원이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설립하고 운영하는 식물 보전 및 전시 공간으로, 국립 수목원과 달리 생활권 가까이 조성되어 접근성이 높은 것이 특징입니다.

    제가 직접 걸어본 순서대로 공간을 정리하면 잔디마당과 항동저수지를 시작으로, 장미원, 어린이 정원, 습지원, 모란·작약원, 야생화원, 계류원, 국원, 메타세쿼이아 길, 그리고 전시 온실까지 이어집니다. 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습지원 데크길이었습니다. 수생 식물과 습지 식물이 자연스럽게 자라는 공간에 나무 데크를 깔아두었는데, 담장 너머로 차 소리가 들리는 도심이 바로 옆인데도 물소리와 새소리만 들리는 묘한 대비가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호수 역시 인공으로 만든 게 아니라 예전부터 농업용으로 쓰였던 항동저수지를 그대로 활용한 것입니다. 서울시 공원녹지관리사업소 자료에 따르면 푸른수목원의 연간 방문객은 수십만 명에 달하며, 생활권 수목원으로서의 도시 생태 기능이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출처: 서울특별시 공원녹지). 장미원은 5월 말에서 6월 초 사이가 가장 풍성한 시기라고 하는데, 제가 방문했을 때는 드문드문 핀 상태였음에도 바람이 불 때마다 장미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 구간만큼은 유독 발걸음이 느려졌습니다.

    숲길과 캠퍼스, 실제로 걸을 때 놓치면 아쉬운 것들

    수목원 후문으로 나오면 구로 올레길 산림 2코스와 연결됩니다. 올레길이란 제주도의 해안 도보 코스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현재는 각 지역 자치단체가 조성한 도보 탐방로를 통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 구간은 황톳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맨발로 걷는 분들도 꽤 많이 보였습니다. 조용해서 좋고, 그 고요함 덕에 생각이 많아지다가 어느 순간 그 생각마저 흐릿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구간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꽤 드문 감각입니다.

    숲길 중간에 신영복 선생 추모 공원이 있습니다. 신영복 선생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20년을 복역한 뒤 독자적인 서체인 신영복체를 완성한 분으로, 성공회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습니다. '처음처럼' 소주 로고 글씨가 바로 신영복체입니다. 숲속에 조용히 자리한 추모 공원이라 지나치기 쉬운데, 잠깐이라도 들러볼 만합니다.

    성공회대학교 캠퍼스 안에는 1936년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가 가족을 위해 지은 별장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이후 대한성공회가 매입해 신학 교육을 위해 헌신한 찰스 구딘 신부를 기리는 이름으로 보존 중입니다. 한옥의 건축 양식이 외관에 반영된 독특한 구조 덕분에 포토스팟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국가문화유산포털에 따르면 이처럼 근현대 건축물의 보존은 도시의 역사 경관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출처: 국가문화유산포털).

    이번 코스 전체를 걸어보면서 느낀 실질적인 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여름 낮에는 햇볕이 강한 구간이 있어 모자와 생수는 반드시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 운동화 착용 필수. 성공회대까지 이어지는 거리가 생각보다 길어 샌들이나 슬리퍼로는 무리입니다.
    • 장미원과 모란·작약원은 시기를 맞춰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5월 말에서 6월 초가 가장 풍성합니다.
    • 대중교통만으로 전 구간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멀리 가야만 여행이 아니라는 말이 이 코스를 걷고 나서야 실감이 났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풍경이 달라지는 곳이라 봄에 갔다면 여름에, 여름에 갔다면 가을에 다시 가보고 싶어지는 코스입니다. 하루 일정으로 부담 없이 짜기에도 딱 맞는 분량이니, 가까운 주말에 한 번 신발 끈 묶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eGYAUVqWTbc